말씀과 기도

요한계시록 수신자들의 삶의 정황: 황제숭배, 이교의 신 숭배,정치적 박해, 경제적 고난(2)

꿀송이엄마 2025. 3. 28.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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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수신자들의 삶의 정황: 황제숭배, 이교의 신 숭배,

정치적 박해, 경제적 고난(2)

 

황제숭배는 주후 1세기에 점차적으로 강화되는 추세였고 칼리굴라(주후 37-41), 네로(주후 54-68), 도미티안(주후 81-96) 황제 시대에 더욱 두드러졌다. 신실한 유대교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을 제외하고 지중해 전체 세계가 황제숭배에 참여했다. 로마 사람들은 황제를 불멸의 존재로 인식했다. 그들은 황제가 죽은 이후에 신이 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황제가 아직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을 신으로 주장하는 것은 오만하고 거만한 행위로 간주되었으며, 그러한 행동은 황제가 죽은 이후에 그 황제의 이름을 저주하는 결과로 남았다. 칼리굴라, 네로, 도미티안 등은 살아있는 동안 신으로 숭배받기를 요구한 황제들이었으며, 그들은 죽은 이후에 단지 몇 달만을 신으로 불렸을 뿐이다.

 

칼리굴라 황제는 자신을 신으로 숭배할 것을 요구했지만 원로원의 반대에 부딪쳤고, 네로황제는 신격화를 원했지만 강력하게 요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도미티안 황제에 이르러 황제숭배의 신격화는 절정에 이른다. 황제숭배는 황제에 대한 자발적인 후원제도를 통해 실행되었고, 황제는 신들의 선택을 받은 신으로 신격화되었다. 따라서 황제숭배는 황제에게 큰 정치적 안정성을 제공했고, 팍스 로마나 현상의 이정표가 되었다.

 

황제숭배는 도미티안 황제가 집권하던 시대에 극에 달했다. 도미티안 황제는 주후 85년부터 969월까지 자신을 신격화하며 공포통치를 실행했다. 그의 신격화와 공포통치는 969월에 근위대 지휘관과 궁중 관리들에 의해 암살당할 때까지 지속된다. 도미티안 황제가 살아 있는 자신을 신격화한 것은 죽은 황제들을 신격화한 로마제국의 관례와 어긋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도미티안 황제는 자신의 신격화를 위해 로마의 유대인들, 철학자들, 점성술사 등을 포함하여 자신의 신격화에 잠재적인 위협이 된다고 여겨지는 소수집단들을 억압하는 데까지 이른다.

 

도미티안 황제는 자신의 신격화를 반대하거나 비판하거나 무시하는 자들을 반역자로 몰아 폭력으로 진압했는데, 심지어 원로원 의원들까지도 반역죄로 기소 당했다. 로마 원로원마저도 도미티안 황제의 강압 통치에 심한 반감을 가졌다는 것은 도미티안 황제의 암살 이후에 원로원이 그의 동상을 철거하고 그의 이름을 공식문서에서 모두 삭제함으로써 그에 대한 기억을 모두 지웠다는 것에서 알 수 있다.

 

로마가 지중해 동부를 점령했을 때, 그들은 소아시아의 도시를 포함한 로마제국의 동부지역이 황제숭배를 통해 로마제국에 충성을 다하도록 요구했다. 소아시아의 지배계급들은 도미티안 황제를 숭배했으며, 거주민들에게 황제숭배에 참여함으로써 그들의 충성심을 증명하도록 했다.

 

황제숭배는 소아시아의 정치, 경제, 사회 분야에 깊숙이 침투되어 있었다. 소아시아의 대도시마다 황제의 신격화를 위해 로마황제의 신전과 동상들이 세워져 있었다. 황제의 신격화는 주화발행에까지 나타났다. 로마제국 시대의 주화는 정치적 선전을 위한 도구였으며, 황제들은 주화에 새겨진 그림들을 통해서 정치적 의도를 전달했다.

 

도미티안 황제는 황제들 중에서 최초로 제우스가 그려진 주화의 뒷면에 자신의 얼굴을 그렸다. 도미티안 황제는 소아시아의 대도시인 에베소에 자신을 위한 거대한 신전과 동상을 세우도록 명령했다. 요한계시록의 기록연대로 추정되는 주후 90-95년 당시에 도미티안 황제는 자신에 대해 주님과 하나님을 공식 호칭으로 사용했으며, 로마제국의 공식문서에서도 그 호칭이 사용되었다.

 

도미티안 황제 시대의 황제숭배는 각 도시에서 자체적인 규례를 통해 시행되었다. 황제숭배의 중심지였던 소아시아에서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가 속한 도시들도 황제숭배에 노출되어 있었다. 소아시아의 도시들은 황제숭배 제의의 중심지인 에베소와 서머나와 더불어 로마로부터 황제를 위한 신전 건립의 승인을 얻으려고 서로 경쟁했다.

 

소아시아 도시들은 로마의 정책에 충성했다. 소아시아의 일곱 도시에는 로마 황제를 숭배하기 위한 신전과 제단, 황제숭배의 제의를 주관하는 사제들이 있었다. 황제숭배 제의를 통해서 소아시아의 주민들은 충성을 맹세했고 소아시아 주민들에게 황제는 은혜를 베푸는 보호자였다. 주민들은 로마제국에 대한 신앙과 충성을 증명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황제숭배에 참여했다.

 

도미티안 황제 시대에 황제숭배가 본격적으로 실행되자 황제숭배를 거부한 그리스도인들은 박해에 직면했다. 하지만 그 박해는 계획적인 박해는 아니었으며 산발적인 압제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1세기 후반에 등장한 클레멘트 11.1은 도미티안 황제 통치하에서 교회에 대한 갑작스럽고 반복적인 박해가 있었다고 증언했다. 또한클레멘트 17.1에서 클레멘트는 자신들 앞에 베드로와 바울이 순교한 시대와 마찬가지의 싸움이 있다고 증언했다.

 

황제숭배 제사에 참여하기를 거부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반국가적인 반역자로 낙인찍혀 고발과 심문을 당할 수밖에 없었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때문에 박해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에는 종교혼합주의가 성행하던 시대였고 유대교와 기독교가 유일신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로마제국에서 반사회적이고 파괴적인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황제숭배를 거부함으로 말미암아 무신론자로 규정당하고 순교 당하기에 이르렀다. 박해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이 황제숭배를 거부한 것은 황제숭배가 우상숭배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왕이시라는 요한계시록의 메시지는 당시의 황제숭배가 우상숭배이며 그 우상숭배에 신앙으로 맞서 투쟁할 것을 격려하는 것이다. 사도 요한이 계시록에서 자신이 본 환상들을 통해 전달하고자 한 것은 스스로에 대해 주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던 도미티안 황제를 숭배하는 것은 우상숭배라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이방 그리스도인들은 처음에 황제숭배를 우상숭배로 생각하지 않았고 단지 로마황제에 대한 충성심의 표현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사도 요한은 황제숭배를 우상숭배라고 규정했고, 점점 증가추세에 있던 황제숭배는 이방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신앙의 위기로 다가왔다.

 

로마황제가 절대적인 만물의 통치자요 주인으로 숭배 받는 세상에서, 제우스신이 이전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영원히 계실 신으로 숭배 받는 세상에서 요한계시록의 수신자들은 우상숭배와 맞서 자신들의 신앙을 지켜야만 했다. 그들은 수많은 이교신전으로 둘러싸인 환경에서 소수의 그룹으로 전락한 채 삶을 이어갔다. 신앙의 투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은 박해를 받고 죽임을 당하기도 하고 사회에서 추방을 당하기도 했다.

 

우상숭배의 위험에 처한 수신자들에게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의 메시지를 통해 주님을 향한 생명을 건 경배를 요구한다. 그것은 황제와 로마제국을 향한 경배를 대체하는 경배이다. 로마제국은 음녀이며 짐승에 불과하며, 로마황제는 주님!’으로 경배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과 어린 양만이 경배와 충성을 받기에 합당하신 대상이시다.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에서 로마제국을 향한 충성은 불경건한 행동임을 공개적으로 규탄하며 요한계시록의 수신자들의 삶에서 형성되어야만 하는 참된 경배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의 메시지를 통해 만물을 다스리는 진정한 통치자는 오직 초월적 실재이신 하나님과 어린 양이시며 눈에 보이는 로마황제가 아니라는 것을 강력히 호소한다.

 

우상숭배에 대한 사도 요한의 강도 높은 경고는 황제숭배 제의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우상숭배가 만연한 사회문화적 환경에 노출되어 있었다.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이 그러한 사회문화적 환경에 그대로 흡수될 수 있는 위험을 강도 높게 경고한다. 수신자들이 살던 주변 환경은 전통적으로 내려온 토착적인 제의와 미신들로 가득했다. 소아시아의 내륙지역인 프리기아에서는 키벨레라는 여신이 숭배되었는데, 그것은 대지의 어머니 여신이었고 군사적 승리의 여신이었다.

 

에베소 지역의 사람들은 대지의 여신인 아르테미스를 숭배했다. 소아시아와 로마에서 성행했던 키벨레 제의에는 황소를 희생제물로 바치는 타우로볼리움이라는 의식이 있었는데, 그것은 대제사장이 제단 위에 바쳐진 황소에게서 흘러나오는 피에 자신의 긴 흰 옷을 적셔 자신을 정결하게 하는 의식이었다. 요한계시록 7:14; 3:4에는 이러한 키벨레 제의에 대한 비판이 나타난다. 7:14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한 자들에 대해 언급하고, 3:4흰 옷을 입고그리스도와 함께 다니는 자들에 대해 언급한다. 이것은 오직 그리스도만이 정결을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심을 나타낸 것이다.

 

한편으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유대교의 회당으로 돌아가 박해를 피하고 황제숭배 강요에 투항함으로써 박해를 피하고 싶은 사람들도 있었다. 유대교는 로마의 법적인 보호 아래 회당에서 예배할 권리와 황제숭배에 대한 면제를 누리고 있었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유대교와 분리된 집단으로 간주되어 어떤 특권도 특혜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인해 점차적으로 유대회당으로부터 분리되어 나왔으며, 1세기 말에 회당 공동체에서 환영을 받지 못했고 회당으로부터 추방당하기도 했다.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 2:9; 3:9에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유대인들을 가리켜 사탄의 회당이라고 비판한다. 합법적 종교로 인정받았던 유대교와 달리 기독교에 대한 로마당국의 불신이 가득했던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면서 로마황제를 주님!’으로 부르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황제숭배를 거부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다가온 신앙의 위기는 정치권력으로부터 온 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황제숭배를 거부한 것과 관련하여 사회, 문화, 경제의 다방면에서 삶의 소외와 고난을 겪는다.

 

소아시아의 각 도시에 있는 황제숭배를 위한 신전들은 당시의 정치경제의 중심장소였다. 신전에서 소아시아의 의회를 개최했고, 거기에서 결정된 법령이 바로 그 신전에서 공포되었다. 로마가 보낸 공문서도 신전에서 접수되었고, 상인단체인 길드의 모임도 신전에서 열렸다.

 

비록 로마당국의 공개적인 박해는 없었을지라도, 그리스도인들은 황제숭배와 상업 길드를 비롯한 로마의 전반적인 사회적, 경제적 생활에 참여하도록 상당한 압력을 받았다. 상업 길드는 우상숭배에 해당하는 축제와 제의들을 포함했다. 황제와 길드의 수호신들을 숭배하는 연례 축제에 참여하라는 압력은 상당한 것이었다. 계시록 2:15니골라 당은 이러한 압력에 굴복한 것이다.

 

2:14-15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각 도시의 신전에는 은행의 역할을 하는 환전소와 시장이 있었다. 신전에 있는 환전소에서 사람들은 돈을 빌리고 이자를 냈으며, 더 큰 돈거래를 위해서는 더 큰 신전에 있는 환전소의 신용보증이 필요했다. 거의 모든 상거래는 신전에 있는 시장에서 이루어졌다. 이와 같이 정치경제의 중심이 되어버린 신전의 역할 때문에, 황제숭배를 거부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정상적인 경제활동에 참여할 수 없었고 자연스럽게 가난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스도인들이 황제숭배와 관련된 사회, 경제적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하자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큰 반감이 로마사회에서 일어났다. 이러한 상황은 일곱 교회가 겪고 있던 환난(2:9)”에 반영되었고, 그 환난은 곧 투옥과 죽음으로 심화되도록 예정되어 있었다(2:10; 13:10). 황제숭배를 거부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사회적 소외와 경제적 불이익이 자연스러운 결과로 찾아온 것이다.

 

2:9-10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13:10 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그러한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의 수신자들에게 신앙의 결단을 촉구한다. 상업조합인 길드를 비롯한 사회문화적, 경제적 활동에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황제숭배에 참여하게 된 사람들이 경제적 이익을 위해 신앙적 타협을 하는 것에 대해 경고한다.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에서 황제숭배 제의뿐만 아니라 로마권력의 정치적 억압(13)에 대한 비판과 함께 경제적 착취 구조(18)도 비판한다. 사도 요한은 교회가 우상숭배로 만연한 로마제국의 문화에 흡수되어 불의를 묵인한다면 그것은 죽은 교회라고 비판한다.

 

고난과 박해의 삶을 살고 있었던 그리스도인들에게 소망과 위로를 주기 위해 사도 요한은 새 예루살렘이라는 천상의 관점에서, 종말의 관점에서 수신자들이 역사를 바라보도록 이끈다.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을 통해 박해받는 신실한 신자들에게 신실한 믿음을 계속 유지하도록 격려하고 약한 자들에게 현실과의 타협을 경고한다.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을 통해 황제숭배의 압력을 가하는 로마세계의 지배적인 사회문화와 권력에 반대되는 초월적 영역을 제시한다. 그 초월적 영역을 지키기 위한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싸움은 로마 사회와 문화, 권력 앞에서 반국가적이고 반사회적인 사람들로 규정되어 배척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요한은 교회가 교회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그러한 사회문화와 권력에 저항해야만 할 것을 요구한다.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을 통해 황제숭배를 수용하는 사람들에게 로마제국의 영적인 실상과 종말적 운명을 보여준다. 사도 요한은 인류 역사를 통치하고 있는 것은 오직 보좌에 앉아 계신 하나님과 어린 양이며 로마황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로마황제와 로마제국은 과거에 멸망했던 바벨론제국과 동일하게 멸망할 것들이며, 오직 하나님과 어린 양만이 이 시대와 다가올 시대의 영원한 통치자이심을 확증한다.

 

그리스도만이 영원한 통치자이시며 승리자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끝까지 박해와 억압에 굴복하지 않을 것을 호소한다. 황제숭배에 동참하라는 세상의 유혹에 굴복하지 않고 인내로써 그들의 신앙을 지킬 것을 호소한다. 끝까지 인내로써 그들의 신앙을 지키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14:4)”이다.

 

14:4-5 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지상사역을 감당하실 때 고난과 핍박을 겪었던 것처럼, 교회시대 동안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동일한 고난과 박해를 겪을 것이다. 하지만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셨듯이 그들도 반드시 승리할 것을 확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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