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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기도

로마서의 저자

by 꿀송이엄마 2025.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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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의 저자

 

로마서의 저자는 사도 바울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1에서 자신이 로마서의 저자임을 직접적으로 밝히고 있다. 사도 바울의 서신은 로마서,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서, 데살로니가후서, 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디도서, 빌레몬서까지 13권으로서 신약성경의 서신서의 절대적인 분량을 차지한다. 로마서가 사도 바울의 저작이라는 외적인 증거는 초대교회 교부들(Clement, Ignatius, Polycarp)이 로마서가 사도 바울의 저작임을 인정하는데서 찾을 수 있다. 로마서가 사도 바울의 저작이라는 내적인 증거는 로마서에 사용한 단어나 신학적 사상이나 문학적 특징 등이 다른 바울 서신들과 동일하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2:1; 고전 12:2; 고후 8-9).

 

또한 로마서의 내용들이 내적인 증거들이 된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1:1에서 자신이 베냐민 지파라는 것을 고백했는데 그것은 동일한 바울서신 빌립보서 3:5에서도 확인되는 사실이다. 로마서 16:3에서는 브리스가와 아굴라를 자신의 동역자라고 말하며 문안하는데, 사도행전에서는 사도 바울이 그의 두 번째 선교여행 때 그들을 고린도에서 만나(18:2-3) 에베소에서 헤어졌다고(18:18-19) 기록하고 있다. 로마서 15:25-27에서 사도 바울은 마게도냐와 아가야 교회들이 보내는 사랑의 선물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가려고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한 사실은 사도행전(19:21; 20:1-5; 21:15, 17-19)과 고린도전후서(고전 16:1-5; 고후 8:1-12; 9:1-5)에서 확인된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10-13, 15; 15:22-32에서 로마를 방문하려는 계획을 밝히고 있는데 그러한 사실은 사도행전 19:21에서 확인된다. 이와 같은 내용들의 일치는 로마서가 바울의 서신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로마서 16:22에는 더디오가 로마서를 기록했다는 말씀이 있다. 그것은 더디오가 필기사로서 사도 바울의 말씀을 받아 적은 것을 의미한다. 더디오가 로마서의 내용을 직접 쓴 사람은 아니다. 로마서의 심오한 신학적 내용은 그것이 사도 바울 자신의 서신이라는 것을 나타내며 또한 일인칭 단수 대명사가 로마서에서 널리 사용된 것은 사도 바울이 서신의 저자임을 나타낸다. 다만 더디오는 대필자로서 사도 바울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 적었다. 바울이 단어 하나하나를 구술해 주었고 더디오는 그것을 가감 없이 그대로 받아 적은 것이다.

 

사도 바울의 삶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건으로 인해 극적으로 변화된다(9).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그는 다소 사람 사울(9:11)”이었다. 다소 사람 사울은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던 스데반의 죽음을 마땅하게 생각하던 사람이었다(7:54-8:1).

 

그는 나중에 아그립바 왕 앞에서 복음을 증언할 때 내가 우리 종교의 가장 엄한 파를 따라 바리새인의 생활을 하였다고 할 것이라(26:5)”라고 자신의 과거에 대해 고백한다. 그는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많은 일을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26:9)”라고 자신의 과거의 행동의 동기를 설명한다. 그리하여 다소 사람 사울은 교회를 핍박하는 일에 앞장섰던 인물이었다(26:10-11; 딤전 1:13). 다소 사람 사울은 율법의 교육을 철저히 받은 사람이었고 그 율법에 따라 하나님께 헌신하고 충성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극적인 경험은 그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화시켰다. 그것은 개인적으로는 회심의 사건이었지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한 사도로서의 부르심을 받는 사건이었다. 그것은 사도로서 사명의 위임을 받는 사건이었던 것이다(9:3-6; 26:12-18).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건으로 인하여 이제 사도 바울은 율법이 생명에 이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으며(7:10), 율법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운 사람이 되었다. 그는 이제 율법에 대해 죽고 하나님에 대해 산 사람이 되었다(2:19). 그것은 율법으로는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아무도 없으며 율법으로는 단지 죄를 깨달을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3:20).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하심을 얻는다는 것을(3:25-28) 깨달은 것은 사도 바울의 삶의 경험으로부터 얻은 철저한 깨달음의 결과이다. 따라서 로마서에 나타난 구원의 길에 대한 사도 바울의 논증은 단순한 사색과 연구의 결과로 온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도 바울이 자신의 삶을 통하여 철저하게 경험하고 깨달은 믿음의 교리인 것이다.

 

특별히 사도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서의 자신의 사명을 깊이 인식한 사람이었다(13:47-48; 15:12; 18:6-7; 22:21; 26:17). 로마서에서도 사도 바울은 자신이 이방인의 사도라는 것을 밝힌다(1:5; 11:13; 15:16-21). 바울서신의 여러 곳에서 사도 바울이 자신을 이방인의 사도로 자각하고 있었음이 나타난다(1:16; 2:2, 8-9; 3:8; 딤전 2:7). 사도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철저히 인식하는 가운데 로마서를 기록한다. 따라서 이방인의 사도로서의 그의 자각은 로마서에 나타난 구원론 논쟁에 영향을 미친다. 이방인의 사도로서의 바울의 자기 인식은 로마서의 구원론 논쟁의 중심에 깊이 반영되어 하나님의 구원에 있어서 유대인과 이방인은 동등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자신을 이방인의 사도로 인식하면서도 자기 동족인 유대인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이방선교에 헌신하면서도 자기 동족 이스라엘이 구원받지 못한 것에 대해 큰 근심과 그치지 않는 마음의 고통이 있다는 것을 증언한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그들의 구원을 원한다고 고백한다(9:1-3).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유대인들을 버리신 것 같이 보일지라도 그 중에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이 있으며 이스라엘 중에 남은 자들은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것을 증언한다(11).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비롯한 바울서신들을 집필하는 데는 그의 성장배경이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사도 바울은 길리기아 다소에서(22:3) 태어난 디아스포라 유대인이었다. 사도 바울이 태어나서 성장했던 고향 길리기아 다소는 소아시아(터키) 남동쪽 해안에 있는 길리기아 지역의 수도이다(9:11, 30; 11:25; 21:39; 22:3). 다소(Tarsus, 타르수스)B. C. 3000년경부터 이어져 온 오래된 역사를 가진 도시이며, 아담의 아들 이 다소를 세웠다고 전해져온다. 다소는 B. C. 2000년에는 히타히트 도시국가의 수도였으며 로마시대에는 커다란 곡창지대로서 키케로가 총독으로 지낼 만큼 중요한 도시였다. 다소는 세계 역사를 통해 인류가 지속적으로 거주한 몇 안 되는 도시 중에 속해 있다.

 

바울은 길리기아 다소에서 성장했지만 유대인으로 양육 받았으며 유대인의 신분 상태를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 사도 바울은 유대민족의 일원이라는 강력한 자부심을 가지고 성장했다.

 

사도 바울은 자신에 대해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11:1)”라고 증언한다. 또한 자신에 대해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3:5-6)”라고 증언한다.

 

사도 바울의 양육배경 중에서 주목해야 할 두 가지 요소는 그가 히브리 사상을 소유한 것과 헬라어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으로서 히브리 사상에 정통했으며 디아스포라 유대인으로서 헬라어에 능통했는데 그것이 로마서의 중요한 배경들이 된다.

또한 사도 바울은 헬라의 철학학교와 스토아 사상에 능숙했는데 로마서 2장의 디아트리베(Diatribe) 논증은 그것을 입증한다. 디아스포라 유대인으로서 자신의 민족성과 유산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면서도 그는 로마시민권을 소유했다. 자신을 헬라인에게나 야만인에게나 다 복음의 빚진 자로 여긴 것이나(1:14) 복음이 유대인과 헬라인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1:16)이라고 증언한 것에서 그의 두 가지 성장배경은 충분히 나타난다.

 

사도 바울이 바울서신을 집필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성장배경은 그가 바리새인으로서 철저하고 엄격한 훈련을 받았다는 것이다(3:5; 23:6; 26:5).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에 있었던 바리새인 교사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배웠다(22:3). 당시의 바리새인들의 공통점은 율법의 해석과 준수에 있어서 정확성이나 명확성 또는 엄격성에 대한 관심을 가졌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특히 조상의 전통에 열심을 가졌고(1:14) 초대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도 그 열심의 결과였다(3:6). 바울이 로마서 서신에서 율법서와 선지서를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것도 바리새인으로서 받은 훈련의 결과였다.

 

사도 바울은 3개의 시민권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유대인이었으며 로마시민권을 가진 자였다. 사도 바울은 다메섹에서 회심하기 이전에는 철저한 율법 신봉자였고 회심한 이후에는 철저한 복음의 전파자였다. 그는 당대의 가장 존경받는 랍비인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율법의 교육을 받은 사람이었고(22:3) 유대교에 대한 불타는 충성으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 하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데 앞장섰던 유대교도였다(8:1-3; 9:1-2).

 

그가 스데반의 순교 때에 증인의 역할을 하며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긴 것도(7:54-8:3), 십자가와 부활의 도를 따르는 자들을 잡아다가 예루살렘으로 잡아가려고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한 것도(9:1-2) 유대교도로서의 하나님에 대한 충성이었다. 하나님은 그러한 그의 열심과 열정을 변화시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데에 사용하신다.

 

하지만 사도 바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유대인이라는 사실도 로마시민권을 가진 자라는 사실도 아니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오직 자신이 하늘나라 시민권을 가진 자라는 사실이었다(3:20).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난(26:12-18) 이후에 사도 바울에게 시민권은 오직 하늘나라에 속한 것뿐이었다. 그는 이제 오직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존재했다. 회심한 이후에 사도 바울은 유대인으로서의 이스라엘의 시민권도(고후 11:22), 로마 시민권도(22:24-29) 오직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을 전파하는 데에만 사용한다.

 

사도 바울은 지중해 연안을 두루 여행하면서 상상할 수 없는 어려움과 역경, 반대와 고난을 무릅쓰고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는데 헌신한다(고후 11:23-28). 회심한 사도 바울에게는 오직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 중요했다.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자로서 그는 자신의 학식도, 재능도, 은사와 열정도 모두 복음을 위하여 사용하는데 전념한다(3:20-21; 2: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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