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2차, 3차 선교여행과 순교
바울의 2차 선교여행은 주후 50-52년경에 있었다. 2차 선교여행은 사도행전 15:36-18:22에 나타난다. 2차 선교여행에서 바울은 실라와 함께 안디옥에서 출발하여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한다(행 15:40-41). 바울은 더베와 루스드라에 이르러 디모데라 하는 제자를 만난다(행 16:1). 그 때 바울의 환상에서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바울은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갔다(행 16:6, NAS, passed through, 땅을 통과했다, BNT, Διῆλθον).
바울 일행은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으며 거기서 마게도냐 사람의 환상을 보고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쓴다(행 16:8-10). 바울 일행은 드로아, 사모드라게, 네압볼리를 거쳐 마게도냐 첫 성인 빌립보에 이르러 두아디라 시의 자주장사 루디아를 만나 복음을 전한다(행 16:11-15).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 갇힌 사건이 발생한(행 16:16-40) 후에 바울 일행은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거쳐 데살로니가에 이르러 복음을 전한다(행 17:1-9).
바울과 실라는 데살로니가에 이어서 베뢰아에서 선교했다. 유대인들의 소동으로 인해 형제들이 바울을 먼저 아덴까지 인도한다(행 17:10-15). 바울은 아덴에서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분노하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론하며 선교한다(행 17:16-34). 고린도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던 아덴은 지적인 오만과 부도덕의 본거지였다.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선교할 때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만나 생업을 함께 하면서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강론한다. 바울은 1년 6개월을 고린도에서 머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한다(행 18:1-11).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와 함께 했으며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밝히 증언하자 유대인들은 그를 비방하고 대적한다(행 18:5-6).
바울은 고린도에 1년 6개월 머무는 동안 데살로니가에 있는 교회에 두 번의 편지를 썼다. 바울은 고린도에 머물면서 이교도 문화의 타락한 풍습들을 많이 목격한다.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들은 바울을 대적하여 법정으로 데려가지만 갈리오는 그들의 소동이 율법 문제라고 판단하여 관심을 두지 않고 쫓아낸다(행 18:12-17). ‘아가야’는 헬라(그리스)의 한 지역을 가리키는데, 아덴, 겐그레아, 고린도가 아가야 주(州)에 속했으며 고린도는 아가야의 수도였다.
바울은 아가야로부터 배를 타고 수리아로 떠나 에베소에 이르러 회당에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며, 그 후에 다시 에베소를 떠나 가이사랴를 거쳐 안디옥 교회로 귀환한다(행 18:18-22).
바울의 3차 선교여행은 주후 53-57년에 있었다. 3차 선교여행은 사도행전 18:23-21:16에 나타난다. 바울은 안디옥 교회로부터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제자들을 굳건하게 한다(행 18:23). 바울은 에베소에 이르러 대략 3년을 머물렀다(행 19:1; 20:31). 바울은 에베소에 있을 동안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갈 것과 로마에 갈 것을 작정한다(행 19:21). 바울은 에베소에서 은장색의 소동을 겪은(행 19:21-41) 후에 마게도냐로 가서 복음을 전하고 헬라(그리스)에 이르러 석 달 동안 복음을 전한다(행 20:1-3).
바울은 주후 55년경에 에베소에서 고린도전서를 썼으며(고전 16:5-8), 같은 해 마게도냐의 어떤 지역에서 고린도후서를 썼을 것으로 보인다(고후 2:13; 7:5). 바울은 헬라에서 주후 56년 말부터 57년 초까지 석 달을 머물렀는데 그곳은 고린도였으며 그곳에서 로마서를 썼을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마게도냐를 거쳐 귀환하면서(행 20:3)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는 계획을 가지고(행 20:16) 있었다. 그 과정에서 바울은 빌립보, 드로아, 밀레도를 지나가며 복음을 견고하게 한다(행 20:4-16). 바울은 밀레도에서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불러 복음을 견고하게 한다(행 20:17-38).
바울은 3차 선교여행 중에 예루살렘에서 적들로 인해 결박과 환난을 당할 것을 알면서도 성령에 매여 선교지의 성도들에게서 모금한 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갈 것을 결심했다(행 20:22-24). 그 이후에 바울이 고스, 로도, 바다라, 베니게, 수리아, 두로, 돌레마이를 경유하여(행 21:1-7) 가이사랴에 이르렀을 때 전도자 빌립의 딸 넷과 선지자 아가보가 바울의 예루살렘에서의 결박을 예언하며 그가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을 막는다. 하지만 바울은 그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감으로써(행 21:8-16) 그의 3차 선교여행은 종결된다.
예루살렘에서 형제들과 장로들의 환영을 받았지만(행 21:17-26)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이 바울을 보고 소동을 일으켜 바울은 로마의 천부장과 군인들에게 체포당하고 만다(행 21:27-36). 이때부터 바울의 긴 재판과정이 시작되었고 체포된 바울은 백성 앞에서 복음을 증언하며(행 21:37-22:29), 공회 앞에서 복음을 증언한다 (행 22:30-23:10). 공회 앞에서의 증언을 마친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에게 나타나셔서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할 것을 말씀하신다(행 23:11).
유대인들 사십여 명이 바울을 죽이려고 공모하려는 계획을 세운 것을 눈치 챈 천부장은 바울을 가이사랴에 있던 총독 벨릭스에게로 보낸다(행 23:12-35). 대제사장 아나니아는 변호사 더둘로와 함께 벨릭스 총독 앞에 와서 바울을 고발하지만 바울은 벨릭스 앞에서 당당하게 복음을 변증했으며 2년의 감금을 당하게 된다(행 24:1-27).
2년 후에 벨릭스의 후임으로 베스도가 왔을 때 바울은 가이사에게 호소한다. 그리하여 바울에게 로마에서 재판받을 길이 열린다(행 25:1-12). 바울은 베스도를 방문한 아그립바 왕 앞에서 또 다시 복음을 변증한다(행 25:13-26:32). 베스도 총독과 아그립바 왕은 바울의 무죄함을 인정하지만 그가 가이사에게 상소한 것 때문에 석방하지 못하고 백부장 율리오의 수하에 붙여 로마로 압송시킨다(행 26:30-28:15).
로마에 도착한 바울은 한 군인이 자기를 지키는 집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복음을 전하게 된다. 로마에서 바울은 2년 동안을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영접하여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한다(행 28:16-31). 그 기간에 바울은 옥중서신인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를 쓴다.
그가 고린도에서 로마서를 썼을 때 바울은 로마에 가고자 하는 소망을 표현했지만(롬 1:8-15)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는 길은 이와 같은 바울의 고난의 여정을 동반했다. 바울의 처음 계획은 로마를 거쳐 스페인(서바나)으로 감으로써(롬 15:23-24, 28) 지중해 서쪽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지만 2년 동안 로마에서 구금당한 상태가 됨으로써 바울의 선교계획은 무산되고 만다.
3차 선교여행이 끝나갈 무렵에 그의 시선이 지중해 너머의 서쪽 지역(고후 10:16)에 머물렀던 것 즉 적어도 스페인까지 머물러 있었던 것은 그가 오늘날의 유럽까지 선교할 것을 염두에 두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사도 바울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그가 로마를 잠시 거쳐 지나가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비록 구금된 상태일지라도 2년 동안이라는 장시간을 보내면서 로마에서의 복음전파를 견고하게 하는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행 19:21; 23:11). 이 때에 바울이 복음을 전한 “모든 시위대(빌 1:13)” 즉 “가이사의 집 사람들 중 몇(빌 4:22)”은 로마황제의 사람들이었고 그들을 통해 로마의 주류사회에 복음이 전파되어 나갔다는 사실을 주목해야만 한다.
그리하여 바울이 로마감옥에 구금된 상태로 로마황제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한 것은 로마황제들에게 극심한 박해를 받아오던 기독교가 주후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 칙령에 의해 공인된 것과 주후 380년에 테오도시우스 황제에 의해 로마 제국의 국교로까지 승격된 것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체포된 바울에게 밤에 나타나신 주님이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행 23:11)”라고 말씀하신 뜻은 바로 그와 같이 바울이 고난 가운데 장시간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다.
비록 당장은 서바나를 비롯한 지중해 서쪽 지역의 선교가 바울의 구금으로 인해 좌절된 것 같이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계획은 로마에서의 복음전도를 견고하게 함으로써 유럽으로 복음이 전파되어 나가는 것이 가능하게 한 것이다.
2년 후에 석방된 바울은 다시 선교여행을 떠나서 에베소로 간다. 바울은 이전에 마게도냐로 갈 때에 디모데를 에베소에 남겨둔 상태였다(딤전 1:3). 이어서 바울은 골로새로 갔으며(몬 22절), 마게도냐까지 여행했다. 바울은 다시 동쪽으로 여행하여 그레데를 방문했다. 바울이 디도를 그레데에 남겨둔 이유는 교회를 조직하고 이끌도록 하기 위해서였다(딛 1:5). 바울은 잠시 자유롭게 활동하던 무렵에 디모데전서와 디도서를 썼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내 바울은 두 번째로 체포되어 로마로 압송되었다. 그것은 로마교회에 로마서를 쓴 지 10여년이 지난 후의 일이다. 두 번째의 로마감옥의 생활은 첫 번째와는 완전히 달랐다. 모든 자유가 차단되었고 바울은 홀로 고립되어 처형의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딤후 4:9-18). 바울은 그 무렵에 디모데후서를 쓴 것으로 보인다. 바울은 구금된 지 오래지 않아서 주후 68년 봄에 순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울이 구금되어 있던 시대에 네로황제는 그리스도인들을 전면적으로 박해했다. 수천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사자의 먹이가 되었고 십자가의 처형을 받았다. 바울과 베드로도 네로황제의 공포정치 시대에 죽음을 맞이했다. 이 시대에 베드로는 십자가의 처형으로 바울은 참수형으로 순교를 맞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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