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의 문학적 장르(1): 구약 선지자들과 초대 교회
선지자들의 예언의 전통을 계승하는 예언서
요한계시록에는 묵시문학, 예언서, 서신서라는 세 가지 종류의 장르들이 결합되어 있다. 묵시문학 작품의 저자들이 그들 자신의 메시지를 ‘예언’으로 간주한(에스라 4서 12:42) 것처럼, 사도 요한도 요한계시록 1:3; 22:7, 10, 18, 19에서 자신의 글을 가리켜 “예언”이라고 말한다.
계 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계 22: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계 22:10 또 내게 말하되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계 22:18-19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요한계시록을 가리켜 “예언”이라고 말한 이러한 구절들은 요한계시록의 또 다른 장르가 ‘예언서’라는 것을 말해준다. ‘예언서’로서의 요한계시록은 이 세상에서의 그리스도인들의 책임과 하나님과 함께 할 영원한 미래에 대해 하나님과 그리스도인들 간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묵시문학 작품들과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점을 가지고 있는 요한계시록은 많은 부분을 구약성경에 근거한 성경적 예언에 할애한다. 요한계시록을 다른 묵시문학 작품들과 비교해 볼 때 성경적 예언서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요한계시록을 묵시문학과 예언서 중 어느 하나로 명확히 규정지을 수는 없는 이유는 두 가지 특성을 다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의 많은 부분이 구약성경의 예언서들과 평행을 이루고 있고, 또 많은 부분이 묵시문학적 특성을 보인다. 사도 요한은 그와 동시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자신의 계시를 명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묵시’와 ‘예언’의 두 가지 장르를 다 사용한 것이다.
‘예언서’로서의 요한계시록은 두 가지 전통을 계승한다. 그 중 하나는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 전통이며, 다른 하나는 초대 교회에서 활동했던 선지자들의 전통을 잇는 것이다. 먼저 요한계시록이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 전통을 잇는 ‘예언서’라는 것을 살펴보기로 한다.
구약성경은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예언을 해석하는 데에 중요한 배경을 제공한다. 요한계시록에는 구약성경을 암시하는 언급들이 가득하다. 구약성경의 직접적인 인용은 나타나지 않지만, 많은 부분에 다양한 구약성경 구절들의 암시가 혼합되어 나타난다.
빌(G. K. Beale)에 의하면, 요한계시록의 전체 구절은 404구절인데 그 중에서 278개 구절이 구약성경을 언급한다. 비록 그 언급들이 직접적인 인용이 아니라 인유(암시, allusion)일지라도 그러한 인유들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통일성을 보여주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더욱이 계시록에서 그토록 많은 구약성경의 구절들이 암시된다는 것은 메시아의 고난과 승리에 대한 약속이 구약으로부터 계시록에 이르기까지 동일하게 펼쳐진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메시아의 고난과 승리는 구약에서 예언되었고 신약에서 성취되었으며 계시록은 바로 그 메시아의 승리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사도 요한은 자신을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 전통을 잇는 선지자로 인식했다.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 10:8-11에서 에스겔 2:9-3:3을 모델로 삼아 자신의 선지자적 사역의 위임에 대해 기록한다.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사역은 과거에 행하셨던 하나님의 사역을 해석함으로써 그것을 현재의 삶에 적용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을 깨우쳤던 것이다. 미래에 관련된 일도 과거와 관련되어 있었다. 따라서 구약 선지자들의 사역을 계승한 사도 요한의 메시지도 구약 선지자들의 선포와 같은 성격을 지닌다.
계 10:8-11 하늘에서 나서 내게 들리던 음성이 또 내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가서 바다와 땅을 밟고 서 있는 천사의 손에 펴 놓인 두루마리를 가지라 하기로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두루마리를 달라 한즉 천사가 이르되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리라 하거늘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그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
구약의 선지자들이 출애굽 사건을 근거로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예견했듯이,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근거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현재에 경험할 것을 선포하며 미래에 완성될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설명한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의 예언사역은 과거에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에게 계시하셨던 것의 성취를 선포하는 것이다.
구약 선지서들과 묵시문학 작품들에 기록된 예언들에 대한 사도 요한의 풍부한 지식은 요한계시록의 내용에 영향을 끼쳤다. 요한계시록에 선지서의 예언들이 직접 인용되지는 않았지만, 구약 선지서의 예언들에 대한 인유들이 요한계시록의 전체 내용에 가득 들어있다. 예를 들면, 계시록 18:1-19:8의 바벨론에 대한 사도 요한의 메시지는 구약 선지자들의 두로와 바벨론에 대한 모든 예언들을 반영한다.
구약 선지서에는 ‘묵시문학’과 ‘예언’이라는 두 장르가 결합되어 나타난다. 묵시문학에는 예언에서 발견되는 문학적이고 주제적인 특징들이 심화된 형태로 내포되어 있다. 묵시문학 작품들에서는 하나님의 보좌에 대한 환상과 그 보좌를 안에 두고 있는 하늘의 성전에 대한 묘사, 하나님의 보좌를 둘러싼 천사들에 대한 묘사,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나타나심의 묘사 등이 있다.
이러한 묵시문학 작품들의 특징들은 요한계시록에서도 나타난다. 요한계시록이 묵시문학과 예언이라는 두 장르가 결합된 구약 선지서들을 계승했다는 것은 요한계시록 1:3; 22:7, 10, 18, 19에서 사도 요한이 자신의 글을 가리켜 “예언”이라고 말한 것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계 1: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요한계시록 1:1의 “계시(Ἀποκάλυψις)”는 다니엘 2장으로부터 왔다. 다니엘 2장에서 이 말은 하나님으로부터 선지자 다니엘에게 전해진 예언적 계시를 의미한다. 구약의 선지서들과 동일한 맥락에서 요한계시록에서도 하나님의 천상의 보좌와 그곳에 계시는 하나님의 모습에 대한 환상이 반복적으로 주어진다. 예언적 특성과 묵시적 특성을 동시에 갖춘 요한계시록은 계시의 원천을 하늘의 성전 안에 계신 하나님의 보좌에 맞춘다.
구약 선지서들의 특징이 미래에 대한 예언적 사실을 전하는 동시에 그 예언적 관심을 당시의 사람들의 삶에 적용시킨 것처럼, 요한계시록도 미래에 대한 예언과 현실의 삶에 동시에 관심을 둔다. 따라서 요한계시록은 구약의 예언적이고 묵시적인 선지서들인 에스겔서, 다니엘서, 스가랴서의 장르와 부합되는 책이며 그 계보를 잇는 책이다.
사도 요한은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 전통을 잇는 선지자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최종적인 지점에 서 있는 선지자이다. 구약 선지자들이 그리스도에 대해 선포한 종말론적 예언들이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으로 말미암아 이미 성취되었다. 그리고 지금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을 기록하고 있는 시점에서 그것은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따라서 사도 요한의 예언적 계시는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적 계시를 함께 모으고 재해석하는 역할을 한다.
다음으로 ‘예언서’로서의 요한계시록은 초대 교회에서 활동했던 선지자들의 전통을 계승하는 것이다. 사도 요한이 초대교회의 선지자로서 활동했던 배경에는 초대 교회 당시의 풍부한 예언 사상이 있다. 요한계시록의 수신자들인 일곱 교회가 위치한 소아시아 서부에도 다양한 신탁 중심지들이 있었다.
따라서 일곱 교회에서 회심한 지 얼마 안 되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조차도 예언 사상에 익숙해져 있었다. 초대교회의 신탁은 정치적인 성격을 띠었으므로 로마의 공공연한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고린도전서 14:29-33; 계시록 1:3의 말씀은 아직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술한 확정된 정경이 없는 상황에서 초대교회의 선지자들이 예배모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선지자들 중에는 한 지역교회에 정착한 사람도 있었고, 여러 교회를 순회하는 선지자들도 있었다.
계 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고전 14:29-33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할 것이요 만일 곁에 앉아 있는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으면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지니라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 예언하는 자들의 영은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모든 성도가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사도 요한은 소아시아 일곱 교회를 순회하면서 신탁적 계시를 전달하는 선지자로서 활동하고 있었다. 신탁적 계시들은 하나님 혹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성령의 영감 아래 교회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들이다. 초대 기독교 선지자들이 환상적 계시와 하나님의 신탁을 계시로 받아 교회에 전달했던 것처럼 사도 요한도 밧모 섬에 유배되기 이전에 그러한 활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요한계시록의 여러 본문은 사도 요한이 일곱 교회의 선지자로서 활동했으며 요한계시록을 ‘예언서’로서 읽어야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 1:3; 22:7, 10, 18, 19에서 자신의 글을 가리켜 “예언”이라고 말한다. 계시록 2:20-21에서 나타난 두아디라 교회에 대한 책망은 그 교회에 속했던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이 사도 요한의 예언사역을 대적했던 것을 말해준다. 계시록 22:6-9은 사도 요한이 소아시아의 지역교회들에서 활동하던 선지자임을 말해준다.
계 2:20-21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계 22:6-9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반드시 속히 되어질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내가 듣고 볼 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그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두루마리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
초대 교회의 선지자들이 환상적 계시와 하나님의 신탁을 계시로 받아 교회에 전달했지만, 그것들은 대부분 말로 진술되었다. 하지만 사도 요한은 문학적 형태로 요한계시록을 기록했다. 1세기의 유대인인 사도 요한은 당시의 언어 규칙과 관습을 따랐다. 성령의 영감 아래 그 당시의 일반적인 문학 형식들을 선택하여 기록한 것이다. 유대인들은 종교적인 글을 서술하는 문체를 발전시켰는데, 그것은 환상을 ‘보고(報告)하는 형식’을 취하는 것이었다.
당시의 예언사역들이 대부분 말로 진술되었지만, 선지자 그룹 가운데는 단편적인 글로 환상을 보고 그것을 보고(報告)하는 경우들이 있었다. 사도 요한은 당시의 규범적인 문체가 되었던 ‘보고(報告)하는 형식’을 따라 요한계시록을 기록했다. 요한은 하늘의 환상과 하나님의 직접적인 신탁(oracle)을 직접 보고 그것을 ‘보고(報告)하는 형식’으로 기록했다. 요한계시록에 사용된 독특한 문학 기법들은 사도 요한이 환상을 보자마자 즉흥적으로 기록한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자신이 본 환상을 묵상하고 정리해서 기록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대부분의 초대 교회 선지자들이 자신들의 예언을 단편적인 글이나 말로 전한 것과 달리 요한계시록은 환상적 계시와 신탁적 계시를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낸다. 요한계시록 전체가 환상적 계시에 대한 묘사이지만, 그 안에는 신탁적 계시도 포함하고 있다. 신탁적 계시는 서론(계 1:8)과 결론(계 22:12-13, 16, 20) 부분에 나타난다.
계 1:8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계 22:12-13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계 22: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계 22:20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일곱 교회에게 주어진 메시지는(2:1-3:22) 교회들에게 전달되는 신탁들이며, 요한계시록에서 환상들에 대한 묘사들 사이에 선지적 신탁들이 끼어있다. 이와 같이 요한계시록이 한 권의 예언서로서 엮어진 것은 구약 선지자들이 자신들의 예언들을 책으로 엮어낸 전통에서 찾을 수 있다. 따라서 사도 요한은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 전통과 초대 교회 선지자들의 예언 전통 두 가지를 다 잇는 선지자이며, 요한계시록은 그 두 가지 특성을 다 가진 ‘예언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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